동해척주비

탁본4종

공수레 2019. 9. 10. 18:42




탁본4종









































<내용> 허목 선생 撰書로 하우(夏禹) 전서체로 썼으며 수화불침(水火不侵)의 효험이 있다고 전하는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 비문 탁본으로 약간의 손상이 있으나 본문에 영향이 없으며 기타 상태 양호하다.
<크기> 122.5×123.5cm
<참고>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동해송(東海頌)]
척주동해비는 강원도 삼척시 정라동 육향산 산정에 있는 높이 175㎝ 넓이 76㎝ 두께 23㎝의 큰 비석이다. 이 비석은 조선 현종때의 정치가이며 대학자인 미수 허목(許穆 : 1595∼1682)선생이 세운 비석이다. 1660년(현종 원년)에 허목 선생이 삼척 부사로 부임할 당시 동해에는 조석간만에 의한 피해가 극심했다. 조수가 삼척 시내까지 올라와 여름철 홍수때는 강하구가 막히고 오십천이 범람하여 주민들의 피해가 심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허목 선생은 부임 다음해인 1662년에 고전(古篆) 하우(夏禹)체의 비문을 작성하고 비석을 세웠다. 이 비문의 유래는 미수 허목(許穆)의 형산비기(衡山碑記)에 의하면, 조선 효종 6년(1655년) 선조의 왕자이며 금석문의 대가인 낭선군(朗善君) 이우가 중국 연(燕)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형산신우비(衡山神禹碑) 77자의 비문 탁본(拓本)을 얻었는데, 그 글자의 형상이 마치 용이나 뱀이 꿈틀거리는 것도 같고 새나 짐승이 움직이는 것도 같고 또는 초목의 형상과도 같이 빛나고 황홀하여 무어라 형언키 어려웠다고 한다. 비문은 옛날 하후(夏后)씨가 이 글로서 치산치수(治山治水)를 함에 중물(衆物)이 제압되어 없어지니 사람들이 안심하고 잘 살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동해의 거친 풍랑도 허목의 이 신비로운 문장에 천지가 감동되어 그 후로 조수의 피해가 없어졌다고 한다. 그리하여 조수를 물리치는 신비한 비석이라 하여 일명 퇴조비(退潮碑)라고도 불린다. 이 비석은 당초 정라 만리도(지금 방파제 끝)에 건립하였는데, 허목 선생 부임 후 48년 뒤인 1708년(숙종 34년)에 풍랑으로 파손되어 바다속에 빠졌다. 그리하여 당시의 부사 홍만기가 사방으로 수소문하여 원문을 찾아 모사 개각 하였다. 1710년(숙종 36년) 2월에 부사 박내정이 죽관도(지금 육향산 동록)에 비각을 짓고 옮겨 세웠다가 1969년 12월 6일 현재의 위치인 육향산 산정으로 이전 준공하였다. 척주동해비와 조금 떨어져 있는 평수토찬비의 비문은 중국 형산의 우제가 썼다는 전자비에서 48자를 선택하여 목판에 새기어 군청에 보관 하던 것을 고종 광무 8년(1904)에 칙사 강흥대와 삼척군수 정운석 등이 석각하여 세운 것이다. 척주동해비문의 필체는 허목의 독특하고 창의적인 하우(夏禹) 전서체로 예로부터 많은 선비들이 이 비석을 탁본하여 수화불침(水火不侵)의 효험을 기원하면서 미수 선생을 추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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