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본
老子本
서예를 하면서 7체 중 가장 멀리했던 것이 예서였던 것 같다.
추사집을 보면 선생은 모든 서법은 예서에서 비롯되며 모든 법이 예서에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젊은시절 7체를 두루 섭렵하면서도 그 중 예서만 이해를 가장 못했다. 그러다 청대의 예서를 공부면서 한대의 예서와는 사뭇 다름을 느꼈다. 한대 예서는 화려하고 섬세하지만 고루하다. 청대 예서는 古勁質朴하면서도 변화무쌍하고 자연스러움을 보게 되었다. 특히 陳鴻壽,金農,鄧石如,桂馥,何紹基그리고 秋史의 작풍을 보면서 예서를 달리 해석하게된 것 같다.
50대 초반에 마왕퇴 백서를 만나게된다. 이에 수 년간 노자을본에 흠뻑 빠져 버렸다. 아니 거의 무아지경... 그러다가 백서 천자문을 수 개월에 걸려 연구하여 발표하였다가 피로에 겹쳐 죽는줄 알았다.
이 시기에 이 책을 보수동 헌책방에서 만나게 된 것이 우연일까? 이 1권의 책에는 1970년에 발굴하기 시작한 長沙市의 마왕퇴 3호분에서 출토된 노자갑본,노자을본 그리고 한대 왕필본 세 종류를 분석 비교하며 원문을 실었는데 그 때 이미 나는 노자 전문을 새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또한 이 때 보수동 골목에서 "마왕퇴의 귀부인"을 극적으로 만나는데 두 권으로 된 마왕퇴 3호분의 기적 같은 내용에 밤을 새워 읽었던 기억이 새삼 행복했다.
장문으로 전각을 하고 싶어 노자 도덕경을 선정했다. 2006년 부터 2008년 3년에 걸쳐 217과를 새기고 측면에 5467자의 원문을 새겼다. 처음 계획없이 시작하다가 노자을본 전문을 측면에 새기기 시작했다. 아쉽게 앞 부분은 놓쳐버렸지만 老子乙本 원문의 빠진 글자를 갑본과 왕필본을 대조하여 메꿔나가는게 무척 재미있었다. 지금은 당시 시간과 사투를 벌인 기억만 아물거릴 뿐.
최근 연구자료가 있어 참고로 올린다.
이 원문을 싣는 이유는 노자을본 ㅁ 안의 탈자를 왕필본과 갑본을 대조하여 나름대로 메꾸어 완성하였는데 후세의 학자님들께 지탄을 받고자 함이니 널리 양해 바란다. 사실 왕필본으로 하면 간단한 일이지만 노자을본을 익히면서 매료되어 내가 나를 이길 수가 없었음을 밝혀둔다.